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invent it.



                                                                   -Alan Kay

by 박태웅 | 2009/04/13 12:00 | 명언들 | 트랙백 | 덧글(0)

성숙기에 접어든 한국 자본주의


 

 텔레비전을 켜고 멍하니 앉아 있다 보면 이 노래를 듣게 된다. “비비디 바비디 부” 디즈니 만화영화 ‘신데렐라’에 나오는 요정이 불렀다는 이 노래를 장동건이 부르고, 비가 부르고, 루이 암스트롱이 부른다. 누구의 것이 되었든 이 노래를 듣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기란 아주 어렵다. 그 뒤엔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것을 배운 다음, 춤을 추거나 시상대에 서 있는 김현아를 만난다. 좀 더 있으면 LED로 만든 빛의 티비를 만나게 되고, 이어서 현대기아가 아니면 삼성차의 자동차 광고를 본다.
 
 만약 당신이 케이블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다면 광고의 개수는 조금 더 늘어나, 파격적인 가격의 홈쇼핑 광고를 보고, 즉시 돈을 대준다는 무수한 제2금융권의 대출광고를 본 다음, 사고나 노후에 대비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보험 광고들을 보고, 그래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니 몇 개의 상조 광고를 보게 된다.


 언제부턴가 텔레비전 광고가, 정확히 말하자면 광고주가 몹시 단조로워졌다는 것을 느낀 적이 없었는가? 어느 요일, 무슨 채널이 되었건 광고 패턴은 늘 같아, 그 광고가 그 광고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모든 게임이 결국 ‘세 마리 말이 달리는 경주’가 된다. 그대로 두면 세 마리가 두 마리가 되었다가 이윽고 한 마리만 남기도 한다. 가전을 보자. 삼성과 금성(지금의 엘지전자)외에도 실용적인 대한전선, 화질의 아남, 탱크주의의 대우전자 등 다양한 업체들이 있었다. 지금은 엘지와 삼성이 우뚝 솟아 있을 뿐이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전자렌지와 같은 보급형 제품의 광고를 TV에서 볼 수 없다. 삼성과 엘지는 오직 최상급 프리미엄제품만 광고한다. 두 회사뿐이니 광고를 하든 않든 제품이 팔리기 때문이다. 몇 남지 않은 광고주들조차 이제는 판매를 위해 광고를 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기도 한다. 포스코나 STX조선해양과 같은 경우는 대표적이다. 시청자들이 포스코에 전화를 걸어 ‘후판 500g만 주세요’ 하거나, STX에다 ‘출퇴근용 배 한 척’을 주문할 리는 없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정부의 신매체 출범 효과 예측이 번번이 어이없이 빗나가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2001년 위성방송 출범을 앞두고 당시 정보통신부는 2005년까지 30조원의 생산유발, 10만여명의 신규 고용창출 효과를 장담했다. 2008년 방송통신위원회가 낸 ‘방송산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위성방송업계 총매출액은 3874억원, 종사자 수는 513명이다. 정통부는 2004년에도 ‘IT 839 전략’을 발표해 지상파•위성 디엠비 사업이 2012년까지 5조2000억원과 7만4000명의 생산유발 및 고용창출 효과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2008년 현재 위성 디엠비 종사자 수는 226명, 지상파 디엠비의 누적적자는 1014억원이다. 한국의 자본주의가 성숙기로 접어들면서 광고주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 기왕에 있는 광고에도 이미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것을 놓쳤거나 부러 외면한 결과다.


 어떤 정책이든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것은 드물다. 누구를 대상으로, 언제, 어떻게 펼치는가에 따라 그 선악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고단백, 고칼로리 음식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이나 운동량이 많은 선수들이 그렇다. 하나, 양쪽 어깨위에 집채만한 스트레스를 얹은 채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하는 중년의 배 나온 아저씨에게 그런 음식은 차라리 독에 가깝다.


 한국의 자본주의가 이제 성숙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 성장기 경제에 옳은 일이 성숙기 경제에는 자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경제를 관리하는 지표도 바꾸는게 옳다. 가령 나이가 서른이 넘은 사람이 매주 키를 재고 있다면 어떻게 보이겠는가? 혈압이나 허리둘레를 재는 편이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이제는 GNP(국민총생산)라는 지표보다는 전체 인구중 중산층이 차지하는 비율을 따지는게 마땅한 이유다.
 
 성장기때는 얼마나 컸나?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겠지만, 성숙기에는 얼마나 건강한가?가 핵심지표가 돼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이 사회가 살만하다고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출산율, 비슷한 맥락의 자살율 등이 그런 점에서 역시 한국 사회의 핵심지표가 될 만하다. 이런 지표로 보면 사회안전망 구축이 불필요한 비용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미래를 가를 명줄이 될 투자라는 것도 명백해질 것이다.

by 박태웅 | 2009/04/10 22:48 | 칼럼 모음 | 트랙백 | 덧글(0)

뽑지 않는 칼의 무서움 - 2


 지난번 뽑지 않는 칼의 무서움 칼럼을 쓰고 며칠 뒤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에버랜드 CB' 대법 전원합의체 회부

 대법원 진상조사단 신영철 대법관 재판개입 인정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법원 내부의 판사들의 여론이 큰 작용을 하였다고 한다. 그분들께 고마움을 표한다. 

 칼럼을 쓰고 난 뒤 아내로부터 다음과 같은 지적을 받았다. 취지가 적절하고 내용도 그만하면 마땅한데 비유가 어색하다는 것이다. '압력을 행사하되 보이지 않게 은근히 했어야지, 왜 그리 아마추어처럼 대놓고 했느냐?'는 말로 들릴만하다는 것이다. 글을 공교로이 쓰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알기 쉽게 쓰면 좋겠다는 조언을 주는데, 옳은 말이라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여 오해를 피하고자 부연으로 몇마디를 더 붙인다. 


  뽑지 않는 칼의 위력은 그 위엄에서 온다. 위엄은 올바름에서 오니, 올바름은 삿(邪)되지 않고, 삿(私)되지 않다. 마음이 삿된 후에 그 행실이 삿되니, 그때 칼은 칼집 속에서도 이미 빛을 잃는다. 칼이 예리함을 잃으면 뽑지 않고는 벨 수가 없는데, 뽑힌 후에는 더 이상 칼이 아니다. 뽑지 않으면 벨 수가 없고, 뽑으면 칼이 아니니, 오로지 올바름으로 제 위엄을 삼을 때 그 칼이 비로소 심검(心劍)이 된다.  

by 박태웅 | 2009/03/17 11:12 | 칼럼 모음 | 트랙백 | 덧글(0)

뽑지 않는 칼의 무서움


 가장 잘 드는 칼, 가장 무서운 칼은 어떤 칼인가. 그것은 뽑지 않은 칼이다. 그는 조용히 칼집에 든 채 자신의 존재를 알릴 뿐이다. 가장 뛰어난 검사는 그러므로 한번 휘둘러 수십을 베는 자가 아니라, 싸움이 끝날 때까지 검을 꺼내 들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다. 검을 휘두르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사람을, 누가 있어 당할 수 있겠는가. 

 근세에 뽑지 않는 칼의 위력을 가장 잘 안 이는 덩샤오핑이다. 그는 유언으로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남겼다. ‘칼집으로 칼날의 빛을 숨기고 어둠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이 말은 곧 80년대이후 20여년간 중국의 공식적인 대외정책 강령이 됐다. 도광양회로 힘을 축적한 중국은 2003년이 돼서야 강령을 바꾸니, 이것이 화평굴기(和平堀起)다. 주위와 화평한 가운데 대국으로 일어선다는 뜻이니, 굴기하되 여전히 도광한다는 것이다. 

 요즈음 법조계가 어수선하다. 신영철 대법관이 재판과 관련하여 후배 판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 그 하나다. 신 대법관은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있던 지난해, 촛불집회 관련 사건 재판에 간섭하거나, 선고를 독촉하는 내용의 전자우편을 여러 차례 판사들에게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지난해 10월14일 ‘대법원장 업무보고’라는 제목으로 판사들에게 보낸 전자우편에서 촛불사건의 조속한 재판 진행을 요구했다. “오늘 아침 대법원장님께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가 있어, 야간집회 위헌제청에 관한 말씀도 드렸다. 대법원장님 말씀을 그대로 전할 능력도 없고, 적절치도 않지만 대체로 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으신 것으로 들었다.” 그는 지난해 11월6일과 24일, 26일에도 “부담되는 사건들은 후임자에 넘겨주지 않고 처리하는 것이 미덕”이라며, 조속한 재판 진행과 마무리를 거듭 요구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외부(대법원과 헌재 포함)의 여러 사람들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기도 하다.” 

 이용훈 대법원장과 신 대법관은 이것이 통상적인 법원 행정의 하나였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11일 내놓은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67%가 ‘담당 법관의 재판에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뽑지 않았노라 주장한 칼날이 훤히 보였던 것이다. 

 또 하나는 삼성에버랜드 재판이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사건을 맡았던 대법원 옛 2부 대법관들은 지난해 12월 치열한 심리를 벌였으나 의견을 일치시킬 수 없다고 판단해,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넘긴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 소부는 판례를 바꾸려 하거나 소속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해당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넘기게 된다.

 한데, 대법원은 한 달을 미루더니 관련 재판관들을 상당수 바꾸고는 개편된 소부에서 사건 심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전원합의체 회부 결정 뒤 재판부 개편을 이유로 다시 소부에서 논의하는 일은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칼 빛이 채 보이지도 않을 만치 무섭게 지나간 칼 바람 소리가 들린 것은 단지 환청이었을까. 

 법원과 삼성이 놓치고 있는 게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삼성에 대해 애정이 많은 편이다. 이병철 선대 회장이 이룬 업적과 그이의 됨됨이는 잭 웰치와도 비교하기 어려울 윗길이라고 나는 진심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의 삼성 사람들이 휘두르는 칼이, 그 휘두르는 방식이 아주 못마땅하고 안타깝다.

 한 개의 무리(無理)를 성공하자면 열 개의 무리가 필요하다. 무리가 무리를 부르는 것이다. 대법원 재판부를 바꾼게 일견 성공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수많은 젊은 판사들과 눈빛 형형한 공무원들의 가슴에 심어둔 자괴감, 그 자괴감이 부를 삼성에 대한 적의 내지 경계감은 어떻게 하려는가.
 
 법원도 마찬가지다. 신뢰는 한 사회를 선진화하자면 가장 중요한 인프라다. 몇몇의 욕심, 더구나 판사 일 인의 승진따위와 바꿀 수가 없다는 뜻이다. 앞의 여론조사에서는 우리나라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외부의 압력 없이 독립적으로 재판하고 있다고 보는지도 물었다. ‘그렇다’는 응답은 16.4%,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64.7%로 나타났다. 경망되이 뽑은 칼의 값이 너무 크다.

by 박태웅 | 2009/03/14 09:51 | 칼럼 모음 | 트랙백(1) | 핑백(1) | 덧글(0)

척추 MRI 보여주며 수술하자던 의사들의 거짓말


[안강의 통증없는 세상] ① 척추를 자해하고 있는 그대에게!

척추 MRI보여주며 수술하자던 의사들의 '거짓말'

...당신은 허리가 아플 때 그 진단을 어떻게 내리는가? 필연컨대 MRI를 찍자는 의사의 말에 100%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의사가 수술해야 한다고 MRI사진을 보여줄 때 당신은 이내 백기(白旗)투항할 것이다.

그러나 로버트슨은 논문을 통해 현대의학의 영상 의학적 진단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논문에서 서술된 자빅(Javik)등의 2001년 연구에 의하면 정상인에게서 91%의 디스크퇴행이 있고, 64%의 팽윤이 있었고, 32%에서의 탈출, 그리고 6%의 터짐이 있는 것으로 연구결과 밝혀졌다. 이 결과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발표된 적이 있다.

무슨 뜻인가? 결론을 말하면 ‘요통과 다리 당김이 있는 환자에서의 MRI 이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프지 않은 사람에서 이상이 나타나는 비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부연하면 사진 상으로 명백한 신경의 눌림이 있어도 멀쩡한 경우가 더 많다.

사실 환자의 입장에서 무시무시한 사진을 내어놓고 당신은 수술을 하여야 한다고 하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 무시무시한 사진의 상당수는 지금 아픈 통증과 상관이 없거나 일과성으로 지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내용을 더 차근차근 이해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수술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디스크탈출이 요통이나 다리 저림의 주원인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다. 그들은 디스크가 전체 요통의 불과 3%이내의 원인일 뿐이며 보다 많은 경우에서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by 박태웅 | 2009/03/06 11:36 | 스크랩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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